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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을 빨리 먹고 싶던 아이

 

안녕하세요.

이번엔 우리나라 최고의 좌완투수 양현종 선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좌완뿐만 아니라 모든 투수부문에서 최고의 선수라 할 수 있지요.

양현종 선수는 1988년 3월 1일 광주광역시 남구 방림동에서 1남 2녀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광주학강초 3학년때 당시 야구부 감독님이 야구를 해보자고 권유했는데 5학년때 야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야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당시 야구부들이 급식을 받을때 줄을 서지 않고 먼저 급식을 먹는것을 보고 야구부를 들어가면 줄을 서지 않고 급식을 먹겠구나 라고 생각이 들어 야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투수를 하기 시작한것은 광주동성중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부터인데요. 당시 감독님과 코치님께서 왼손잡이인 양현종 선수를 투수를 하시키려고 했었답니다. 타자에서는 크게 소질이 없었던 양현종 선수였습니다.

초등학교시절 양현종

 

학창시절

 

 

양현종 선수는 선수생활을 하면서 중학교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합니다. 사춘기 시절 많이 맞기도 해서 어머님께 야구를 그만두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를 꿋꿋이 이겨낸 양현종 선수는 신문과 각종 기사에 본인 이름이 나오고 TV중계에도 본인이 나오는걸 보고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점점 성장하던 양현종 선수는 야구계의 명문고인 광주동성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게 됩니다. 당시 한 학년 선배였던 한기주 선수와 함께 주목받는 투수로 급성장하게 됩니다. 

당시 백넘버 29번

광주동성고 시절에 김광현 선수에 이은 두번째 좌완투수 기대를 모았고, 청소년대표팀도 뽑혀 2006년 IBAF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서 김광현 선수와 한국의 우승을 이끌었는데요. 당시 대회 올스타 왼손투수부분과 방어율왕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006년 IBAF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서 김광현 선수와 한국의 우승

 

 

프로시절

 

양현종 선수는 2007년 신인트래프트에서 KIA타이거즈의 2차 1라운드지명을 받고 입단을 하게 되고, 입단한 후에는 팀 5선발로 활약을 하다가 팀의 중간계투 요원이 부족해지자 중간계투로 보직을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크게 주목을 받았던것에 비해 활약이 미비하자 주로 패전담당투수로 나오게 되었고, 1승 2패의 성적으로 그렇게 시즌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2008년시즌 중반에 평균자책점이 8.50까지 오르며 부진했는데 그당시 팬들은 그를 불현종이라고 부를만큼 성적이 좋지 않았습니다.  

2009년 시즌에 들어서 빛을 발하게 되는데요 당시 기아는 6선발체재로 윤석민, 구톰슨, 로페즈, 곽정철, 이대진과 함께 양현종 선수는 선발투수에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선발투수로 시즌 초 10경기동안 5승 2패를 기록하였지만, 7월에 들어 페이스를 잃어 다시 중간계투로 잠시 보직을 이동하게 됩니다. 올스타브레이크 이후 다시 선발진으로 올라온 양현종은 후반기에 차곡차곡 승수를 쌓기 시작하더니 최종 12승 5패 1홀드를 기록하게 됩니다. 그해에는 기아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며 역사상 가장 극적인 한국시리즈 7차전 9회말 2아웃에서 나지완을 끝내기 홈런으로 우승을 하게 되는등 최고의 시즌을 보내게 됩니다.

2010년 시즌에는 16승 8패를 다승 2위를 기록하였고,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발탁되어 금메달 획들에 일조하였고, 이로인해 군면제를 받게 되지요.

2011년 시즌에는 양현종선수에게 좋은 기억이 아닌 시즌입니다. 7승을 하였지만 이는 타선의 지원을 받을때가 많았고, 평균 자책점이 6점대로 시즌을 마치게 됩니다. 무너진 원인으로 밸런스가 무너지며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새로운 좌완영건 심동섭이 등장했고, 2012년 시즌에 심동섭을 선발로 쓸수 있다는 언급을 할 정도로 좋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2012년에는 우리나라 야구역사상 최고의 투수였던 선동열선수가 기아타이거즈의 감독으로 부임하게 됩니다. 하지만 양현종 선수는 어깨부상을 당해 2군에서 훈련을 하게 되었고, 1군에도 등록되어 등판하기도 하였지만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한채 다시 2군으로 내려가게 되고 팀도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가능성이 낮아지고 그렇게 시즌을 마치게 됩니다. 

 

 

 

부진한 시즌을 보냈던 양현종 선수는 2012년 시즌을 마친 후 스프링캠프에서 열심히 구슬땀을 흘렸고, 시범경기에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2013년 시즌 4월에는 시즌 3승과 평균자책점 1점대의 놀라운 모습을 보여줬으며, 시즌중반에 허리를 다치는 부상을 입은 후 재활치료하고 다시 올라왔지만 전반기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시즌 10승은 하지 못한채 그렇게 시즌을 마무리 하게 됩니다. 

2014년 시즌전에 당시 기아타이거즈의 우완에이스 투수였던 윤석민이 빅리그 진출로 팀을 떠나게 되어 양현종선수가 시즌 개막전 선발투수로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그냥 122개의 공을 뿌리며 무실점으로 상대팀을 틀어막고 승리투수가 됩니다.  8월달까지 삼진 2위 14승으로 다승 2위로 분전했지만 후반기에 체력이 저하된 이유에서 인지 2승만을 추가하고 시즌 16승으로 마무리 하게 됩니다.  이때 메이저리그팀에서 양현종선수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소식이 들렸으나 해외진출은 무산이 되고 맙니다. 

2015년 시즌에는 김기태 감독으로 바뀌었고, 작년에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던 윤석민 선수가 돌아오자 마자 마무리도 변경되자 실질적인 선발투수 에이스는 양현종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시즌 개막전에 유일한 국내선수 선발투수로 이름을 올리게 되고 승패를 기록하지 못하고 마운드에서 내려오게 됩니다. 그후 승운이 없어 승수쌓기에 계속해서 실패를 하게 되지만 5월달에는 평균자책점 1위(볼넷도 1위)를 기록하게 됩니다. 

그래도 팀내 에이스였던 양현종 선수는 15승을 하게 되고, 최동원상을 받는냐 받지 못하느냐 말이 많았지만 결국 그 상은 유희관선수가 받게 되고 그렇게 시즌을 마무리 합니다. 

2016년 시즌은 양현종 선수에게 아주 중요한 시즌이 됩니다. 바로 이 시즌이 끝나면 FA자격을 얻게 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는것인지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지만 중간계투와 마무리 투수들이 불을 지르게 되면서 승수를 쌓지 못하고 4월을 보내게 됩니다. 그리하여 운없는 선수에게 주어지는 윤석민 상의 강력한 후보로 오르게 되지요. 

우여곡절끝에 5월 13일 시즌 첫승을 하게되지만 이후에 투수로써 잘 던지긴 하였지만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승수쌓기에 계속해서 실패를 하게 되고 6월 17일 한달이 넘은시기에 2승을 하게 됩니다. 7월달에는 이닝, 방여율, 퀄리티 스타트 모두 1위를 하고 있지만 5승 7패..

7월 30일 6승을 하고 탈삼진 1위, 국내투수 방어율 1위 이닝수 1위 투수가 되었습니다. 시즌 막판 10승을 거두게 되었고 그해 국내 선수 200이닝, 3년 연속 100탈삼진, 타이거즈 최소 좌완투수 3년연속 10승을 기록한 선수로 시즌을 마치게 됩니다.

2017년에는 1년 단기계약으로 22억 5천만원에 계약을 하고 기아에 남기로 합니다. 대신 1년후에는 선수가 원하는대로 해주겠다는 조건으로 말이죠. 그래서 그런지 양현종 선수는 날개를 단 듯 승수를 빠르게 쌓아갑니다.

4월달에만 4승을 챙겼고, 6월달에는 10승을 했습니다. 무서운 페이스로 8월에는 17승을 하였고, 기아의 역대급 외국인 투수로 불리는 헥터노에시도 15승을 하며 1996년 조계현 이대진 이후에 21년만에 한시즌 15승을 한 두 투수가 탄생하게 됩니다.

20승이란 대 기록에 다가가던 양현종 선수는 19승을 하고 로테이션상 양현종선수에게 선발은 1경기가 남았는데 김호령선수의 멋진 수비덕분에 20승을 달성하게 됩니다.

 김호령의 수비이후 표정변화

정규시즌에서 1위를 하고 한국시리즈에 직행하게 된 타이거즈는 두산을 상대하게 되는데요.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양현종 선수는 9이닝 4피안타 2사사구 무실점으로 한국시리즈 최초 1:0완봉승경기를 만들어 냅니다. 투수전이 팽팽했던 그 경기는 김주찬선수의 빠른 발을 이용한 센스있는 플레이로 양의지 선수의 판단미스를 잘 파고 들어 1점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그렇게 한국시리즈를 우승하게 되고, 양현종 선수는 한국시리즈 MVP에 오르게 되고, 정규시즌도 MVP수상, 2014년에 이어 2017년에도 최동원상도 수상하게 됩니다. 상복이 터진 2017년 시즌이었습니다.

그리고 연봉을 23억 받는 조건으로 제계약을 하게 됩니다

2018년 시즌에는 전년도 우승팀이라는 것과 각종 상을 휩쓸었던 양현종선수에게 관심이 쏠린 시즌이 시작되었습니다. 4월에 통산 110승을 하고, 7월 3일 한화전에서 12삼진을 기록하며 본인의 한경시 최다 탈삼진 기록을 갈아치우게 됩니다. 9월 15일 SK를 상대로 동산 120승 좌완투수 최초 5연속 170이닝을 던지는 선수가 되었지만 옆구리 부상을 입게 되어 1군에서 말소가 되고 와일드카드결정전에 부상이후 선발로 나와 부상투혼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시즌을 마무리 하게 됩니다.

2019시즌 단년계약을 했던 양현종 선수는 다시 기아와 전년도와 같은 연봉으로 재계약을 하고 정규시즌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양현종선수는 팀 타선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또한 최고구속 139km대로 구위가 많이 떨어져 결국 5월중반까지 1승 7패라는 초라한 성적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점점 회복한 양현종선수는 정규시즌을 16승 8패라는 성적으로 후반기에는 절정을 기량으로 마무리 하게 됩니다. 사실 양현종 선수가 초반에 좋지 않았던 이유는 양현종선수의 셋째인 아들이 심장이 좋지 않아 큰수술을 받게 되었고 그로 인해 스프링캠프에 합류가 늦어졌기 때문에 몸을 만들어 끌어올리는게 쉽지는 않았을거기 때문입니다.

 

 

 

국가대표 양현종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2017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1라운드 탈락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

2019 WBSC 프리미어 12 준우승

 

마무리

 

 

기아타이거즈에 이런 선수가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일것입니다. 꾸준히 자기몫을 해주고 있으며, 팬들을 생각하며 기아에 남아주는것만 해도 정말 대단하지요. 그래서 팬들은 이제 양현종 선수는 우리에게 해줄 만큼 해줬다 우리도 그를 응원하자며 메이저리그도 도전해 보라고 할 정도니 말이죠. 타팀팬들도 양현종선수만큼은 인정해주고 있으니 뭐 이정도면 선수로써는 실력뿐만아니라 인성까지 성공한 선수는 틀림없는거 같습니다. 

이상으로 양현종선수의 간략한 야구 인생을 돌아봤습니다. 

긴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잘못된 점이나 수정 할 부분이 있으면 댓글 남겨주시면 다시 알아보고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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