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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게 무슨일입니까?

 

코비가 사망이라니요 현재 사회인농구팀에서 농구를 하고 있는 농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써 정말 안타까운 소식이 아닐수 없습니다.

 

제 어린시절 조던을 좋아했고 제 청년시절 코비를 좋아했었습니다. 제 마음속에 NBA팀은 시카고였으며 다음은 LA였습니다.

 

그만큼 두선수는 돋보적이었죠. 코비가 가장 닮고 싶어했고 우상으로 섬겼던 사람이 조던이었습니다. 조던의 트레이드마크중 하나였던 혀내밀기!!를 따라한것은 그를 닮고 싶어하는 마음이었던거죠.

 

 

 

그(조던)과 비교되는 샷 하나 더 나갑니다.

 

 

뭐 그냥 쉬는 모습이다. 라고 볼수 있겠지만 두선수는 플레이 스타일이 정말 많이 닮았죠. 특히 페이더웨이는 두선수 모두 막기가 어려운 슈팅으로 수비수들이 참 고생을 많이 했드랬죠. (아~ 계속 과거형으로 글을 쓰니 너무 가슴이 아프네요)

 

코비의 페이더웨이

  

 

코비의 업적에 대해 알아볼까요?

 

코비 브라이언트는 1978년 8월 23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고  NBA 농구 선수 조 브라이언트와 패멀라 콕스 브라이언트의 3명의 자식들 중 막내로 단 하나의 아들이 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조 브라이언트(Joe Bryant, 1954~)는 8년 동안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76ers), 샌디에이고 클리퍼스(현, LA 클리퍼스) 등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휴스턴 로키츠에서 어시스트 코치를 했습니다. 


코비 브라이언트는 로워메리온 고등학교 시절 2,883 득점을 올리며 팀을 리드했고 그 기록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선수인 윌트 체임벌린의 최고득점기록을 경신한 것이었고, 코비는 고교 2∼4학년 동안 팀을 77승 13패로 이끌었고 4년 모두 주전으로 뛰며 각종 상들을 수상하였습니다. 그의 고교 시절 기록은 평균득점 30.8점, 12 리바운드, 6.5 어시스트, 4.0 스틸, 3.8 블록슛을 기록합니다. 

199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샬럿 호네츠(현, 뉴올리언스 호넷츠)에 1라운드 13순위로 지명된 코비는 그의 재능을 높이 산 LA 레이커스가 그 당시 팀의 간판 센터였던 블라디 디박을 내놓는 파격적인 트레이드를 해옴으로써 LA 레이커스 유니폼을 입게 돼, 미국 프로농구(NBA) 사상 최연소 데뷔를 하게 되었습니다. 

 

 

 

 

 

 

 

 

코비는 NBA 2년차인 1997∼1998 시즌에 이미 평균 15점을 넘어설 정도로 득점 능력을 과시했고, 이에 이 시즌에 사상 최연소로 올스타전 주전으로 선발되었구요 그리고 그 다음 시즌인 1998∼1999 시즌부터는 선배 에디 존스를 밀어내고 레이커스의 완벽한 주전 선수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특히 코비는 리그 최고의 센터였던 샤킬 오닐과 놀라운 호흡을 보이며 리그 3연패(2000·2001·2002)의 대업을 달성, 레이커스의 전성기를 다시 여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죠.

코비는 NBA 올스타전 MVP만 4회(2002ㆍ2007ㆍ2009ㆍ2011년) 수상하였고, 2007년에 NBA 정규리그 득점왕, 2008년에 NBA 정규리그 MVP, 그리고 2009년과 2010년 NBA 파이널 MVP를 차지한 바 있다. 한편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미국 대표팀으로 출전해 8년 만에 남자농구 금메달을 따낸 데 이어,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 2연패를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어떤가요? 코비는 조던을 대체 할 선수 중 하나였습니다. 

 

그가 이렇게 떠나다니요. 농구팬의 한 사람으로써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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